잡히면 어쩌나 ‘추방공포’ 병원도 못가

경미한 위법 기록 드러날까 전전긍긍
권익단체‘핫라인’전국서 고민 상담
한인 서류미비자들의 24시

10년전 가족들과 여행비자로 미국에 온 뒤 체류기한을 넘겨 불법체류 신분으로 LA에 살고 있는 한인 김모(50)씨. 한인타운에서 이른바 불법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씨는 최근 극심한 추방 공포에 매일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 21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체자 단속 및 추방 전면 확대 방침이 발표된 후 김씨는 자칫 불법택시 단속에 걸릴 경우 서류미비자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씨는 “고정 손님만 받고 있는데 혹시라도 암행단속으로 적발돼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있다”며 “신호와 교통법규를 아무리 잘 준수하더라도 한순간 실수하면 추방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택시 운전을 그만 둬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LA에 유학을 와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취업을 한 한인 이모씨는 회사가 문을 닫아 순식간에 불체 신분으로 전락한 후 한인타운 식당에서 일을 하며 두 살된 딸과 아내 등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이민 단속으로 전과 기록이 없는 서류미비자들이 집이나 일터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씨는 “한인타운 게스트하우스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어도 단속반이 아닐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아이가 아파도 돌아다니다 혹시나 체포될까봐 걱정스런 마음에 병원도 가지 못하는 비참한 현실이 다 싫고 지긋지긋해 그냥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도 아내와 의논하고 있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불법체류자 단속과 추방을 강화하는 새로운 반 이민 정책 시행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추방 공포감에 사로잡힌 한인 서류미비자들이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지난 21일 불체자 단속과 추방을 강화하는 국토안보부 정책이 공식 발표되면서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도 불체 신분 이민자들의 ‘단속·추방 공포’가 고조되고 있다.

한인 이민자 권익보호 단체인 민족학교 등에 설치된 ‘이민자 핫라인’에는 반 이민 단속 지침 발효 후 추방공포에 떨고 있는 한인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민족학교 정상혁 핫라인 담당 코디네이터는 “지난주 하루 평균 20여 통의 문의전화를 받았다”면서 “LA뿐 아니라 오하이오주와 뉴욕에서 걸려온 문의전화도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영주권자들 가운데 “음주운전 기록이 있는데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입국시 추방당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전했다.

이민 당국은 지난 9일 미전역 최소 11개 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체자 검거 급습작전을 진행해 이민자 680여 명을 체포한 바 있다. 단속요원들의 급습작전은 추방 대상 불법체류 이민자의 가정이나 직장을 급습해 체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난 9일 불체자 급습에서 한인 임모(25) 씨도 남가주의 직장에서 근무하던 중 단속 요원들에게 붙잡혀 현재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한편 LA 민족학교를 비롯한 한인 이민단체들은 이민자들이 추방과 구금 위기에 처했을 때 행동요령이 적힌 가이드라인 7,000여장을 LA와 시카고, 버지니아 주의 한인 교회와 성당을 중심으로 배포하고 있다.

‘만약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이 집 문 앞에 나타나면’으로 시작하는 대응 홍보 글에서 ‘문을 열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 그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집에 왜 왔는지 단속요원에게 묻고, 의사소통이 안 되면 통역을 요청하라고 권유했다. ICE 요원이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판사가 서명한 영장이 있는지를 묻고, 영장을 창문 또는 문틈으로 확인할 것을 권익 단체들은 조언했다.

<한국일보 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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