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덕에 번창하는 아이오와 시골마을

타이슨 식품 직원들인 댄 스미스와 태미 헤플린. 스톰 레이크의 육가공 공장에서 37년 동안 일해온 스미스는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백인남성 일색이었던 공장 근로자들은 이민자와 난민들로 바뀌었고, 노조는 사라지고 임금은 형편없이 깎였다.

육류 가공공장 타운 스톰 레이크
타이슨 등 기업 난민 채용

아이오와, 스톰 레이크는 육류 가공업 타운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태생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돼지고기 공장, 닭 공장, 칠면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거대기업인 타이스 식품을 비롯한 공장들이 이민자나 난민들을 주로 채용하면서 임금은 형편없이 깎이고 일은 더 위험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주변 다른 마을들은 죽어가는 데 반해 이 마을은 이민자들로 인해 날로 번창하고 있다.

스톰 레이크 토박이인 댄 스미스가 지난 1980년 돼지고기 가공공장에 첫 출근했을 때, 그 일자리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노조가 막강하던 그곳에 취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이미 그곳 직원인 아버지나 삼촌 혹은 형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임금은 시간당 16달러와 각종 베니핏 – 자기 집과 자동차 두어대 그리고 캠핑카와 보트를 갖고 살만한 보수였다. 아내는 물론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았다.

“특별한 기술 없이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일자리였다”고 현재 66세인 그는 말한다. 아버지를 따라 공장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는 거의 40년 일하다 이달 말로 은퇴한다.

그 동안 노조는 사라진지 오래이고, 함께 일했던 백인남성 동료들도 대부분 사라진지 오래이다.

변하지 않은 것 하나가 있다면 임금이다. 37년 전 처음 일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시간당 16달러 정도이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다면 지금 그는 시간당 47달러를 받아야 맞다.

글로벌 무대의 치열한 경쟁, 농업분야 자동화 그리고 그로인한 공장 폐쇄 등 일련의 사태들은 많은 시골 마을들을 고사 위기로 몰아넣었다. 중산층으로 살만한 임금의 농장과 노조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젊은이들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데모인 같은 도시로 이주했다. 고향에 남은 것은 나이든 사람들과 버려진 상점들 그리고 암울한 경제전망이다.

반면 스톰 레이크는 임금이 계속 삭감되는 가운데도 기어이 살아남았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로부터 밀려드는 이민자, 난민들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그들이 저임금에 고되기 그지없는 돼지고기 가공 공장, 닭 공장, 칠면조 공장 일자리들을 메우고 있다. 그들이 지역 상점들에서 돈을 쓰고, 식당과 식품점들을 개업하고 있다. 그들이 교회 의자들을 메우고 모교 운동팀 벤치를 채운다.

아이오와 주 인구의 88% 이상이 백인(히스패닉 제외)인 데 비해 스톰 레이크에서 백인은 절반이 안된다. 공립학교 복도를 지나가 보면 귀에 들리는 언어가 18가지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이주자가 경제적 역동성을 가져온 측면이 있는 반면 일종의 불안과 증오를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 보수성향 백인들이 주류인 이 지역구의 공화당 연방하원의원인 스티브 킹은 이민자와 난민들로 인해 임금이 내려갔고, 반갑지 않은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었고 공공복지 예산에 부담이 생겼다고 비난한다.

그의 발언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역구에서 그의 인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가난하고 기술 없고 영어 못하는 이민자와 난민들이 떼로 몰려들 때 인구 1만1,000명의 스톰 레이크라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긴장과 마찰이 있었다. 하지만 수십 년 함께 살고 일하다 보니 주민들은 자신들이 공동의 미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슷한 크기의 다른 커뮤니티들은 인구가 줄어 교육구를 합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들이 터질 정도로 팽창하고 있지요.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어느 쪽을 택할까요? 죽어가는 커뮤니티 아니면 성장하는 커뮤니티?” 마크 프로서 경찰서장의 말이다.

스미스는 이민자 유입이 경영주들의 임금 삭감을 보다 용이하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처음 임금이 깎인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이 아니라 공장주들의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기억한다.

시작은 하이그레이드 식품제조사였다. 재래식 육가공 공장으로 1957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스태디엄에 핫도그를 선보인 회사이다. 이 회사가 운영한 스톰 레이크 공장에서 스미스는 처음 일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신생 회사들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육류를 포장하고 수퍼마켓 체인과 패스트푸드 식당들에 납품하게 되면서 하이그레이드는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다. 그러자 하이그레이드는 1981년 근로자들에게 시간당 3달러씩 임금을 삭감하자고 요청했다. 근로자들이 거부하자 공장은 문을 닫았다.

몇 달후 아이오와 비프 프로세서스(IBP) 라는 회사가 공장을 사들이고 다시 문을 열면서 임금은 절반 이상 깎이고 노조 활동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스미스는 야간 청소일로 복귀했다. 임금은 시간당 5달러 50센트. 베니핏은 없었다. 한편 그의 이전 동료들은 대부분 복직하지 못했다. 새 고용주가 노조 지지자들을 배제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회사 측은 멕시코에서 그리고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의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인력을 적극 모집했다.

이후 아이오와와 중서부에 생겨난 육가공 공장들은 저임금에 빠른 작업라인 그리고 부상 위험 높은 작업장으로 바뀌었다.

IBP는 2001년 타이슨 식품에 매입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라인 작업 초임은 시간당 15달러. 주 최저임금인 7달러25센트의 두 배가 넘지만 일할 사람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작업장에서 8시간이나 그 이상을 꼼짝 않고 서서 정신없이 빠르게 날아드는 고기를 잘라내다 보면 몸과 영혼이 마비될 정도이다. 닭고기 공장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장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시간 당 임금이 20달러나 25달러가 된다 해도“백인들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스미스는 말한다.

타이슨의 돼지고기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2,200명 근로자 대부분은 히스패닉이다. 그 다음 많은 인종이 아시안. 일이 너무 고되다 보니 직원 채용 캠페인은 끊임없이 진행된다. 반면 영어 못하고 기술 없는 이민자나 난민으로서는 가축 도살하면서 그만한 돈 받는 것은 성공에 이르는 사다리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라오스계인 아벨 생찬펭이 좋은 예이다. 타이 난민 보호소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온 그는 16살 때인 1997년 북가주에서 스톰 레이크로 왔다. 고교 졸업 후 부모를 따라 타이슨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36살인 지금 공장 감독으로 300명 생산직 근로자들을 감독한다. 봉급으로 집을 마련했고 자동차 두 대를 가지며 그 지역 중상층으로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 “타이슨에서 일하게 된 게 정말 축복”이라고 그는 만족해한다.

주전체 카운티의 2/3은 인구가 줄어드는 아이오와에서 스톰 레이크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계속 성장하고 번창하는 타운이다. 난민과 이민자들이 떠나지 않고 정착하고 대학에 가느라 집을 떠났던 2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덕분이다.

<뉴욕 타임스 – 한국일보 특약>

타이슨에서 공장 감독으로 일하는 아벨 생찬펭(36)이 새벽 4시30분 출근을 하고 있다. 타이 난민 보호소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에서 일을 시작해 지금은 편안한 중산층의 삶을 누리고 있다

<그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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