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트럼프 고삐잡기’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오전, 자신이 쏟아놓은 ‘화염과 분노’의 초강성 발언으로 전 세계를 아연 긴장케 만든 ‘북핵 위기’를 잠시 잊은 듯 이런 트윗을 날렸다.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은 내 기대가 지나치다고 했으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7년이나 폐지와 대안을 들어왔는데, 왜 안하나?” 이틀 전 매코널이 한 모임에서 대통령이 정치경험 없고 민주적 입법절차 이해가 부족해 기대감이 지나치다고 불만을 표한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대통령이 자당의 의회 지도자를 이런 식으로 공개 비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지만 지난 몇 주 부쩍 고조되어 온 트럼프와 공화당 의회의 불화가 단적으로 드러난 민망한 사례에 불과하다. 드라마틱한 결별이나 정확한 충돌의 순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 특히 상원의원들이 ‘무모하고, 무절제한’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를 절감하며 서서히 등을 돌리는 분위기는 확실하게 감지되고 있다.

7월말 오바마케어 폐지가 무산된 후 의회를 비난하고 압박하는 대통령의 공격은 날로 수위가 높아졌고, 이런 대통령을 전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맞서며 ‘트럼프로부터의 독립’을 자부하는 의원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보기 역겨워진’ 그들이 지난 주 한 달 간의 별거에 들어갔다. 오바마케어 폐지를 재시도하라는 트럼프의 압박을 묵살한 상원은 3일 밤에, 17일의 긴 휴가를 받은 대통령은 4일에, 각각 워싱턴을 떠났다. 갈등도 풀지 않고 등 돌린 이들이 다시 만나는 것은 의원들이 돌아오는 9월 초 노동절 연휴가 끝난 후다.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운 상원의 ‘자립’ 의지는 휴회 중 대통령의 ‘권한 남용’ 가능성을 차단한 조치에서도 확실하게 읽혀진다. 공화당 대통령이 공화당 주도 의회가 쉬는 동안 법무장관을 교체할까 의심되어 휴회 아닌 ‘형식상 개회’로 상원 문을 열어놓은 채 휴가를 간 것이다.

최소한 1명의 상원의원이 3일마다 한 번씩 상원에 나와 개·폐회를 알리는 형식적 회기를 유지하는 편법이다.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서 빠진 탓에 눈 밖에 난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을 전격 해임하고 상원인준을 생략한 채 새 법무장관을 세워 로버트 뮬러 특검까지 해임할 수 있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번 주로 취임 200일을 넘긴 트럼프의 입지는 점점 더 불안정해 보인다. 대부분의 신임 대통령에겐 집권 초기에 자당을 단합시킬 황금 기회가 주어진다. 특히 8년 동안 백악관 밖에서 서성거려온 정당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의 공화당은 지난해 대선 경선 직후의 사분오열 상태에서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힘을 합해 국정의 방향을 정하고 정책을 입법화시켜야 할 파트너인 대통령과 의회의 싸움소리는 ‘신혼 초’부터 담장 밖까지 요란하다.

말 안 듣는 의회를 조롱하고 위협하는 대통령과 신뢰 못할 대통령에 반발하고 도전하는 의회의 반목은 지난 두 주 특히 심했다. 대통령의 회유와 협박에도 중도파 3명 의원의 반대로 숙원과제 오바마케어 폐지가 무산되었고, 보수진영의 총아 제프 플레이크 상원의원은 ‘보수의 양심’이라는 새 저서를 발간, 트럼프를 애초부터 강력 저지하지 못한 공화당을 자책하며 지금부터라도 ‘벌거벗은 임금님’을 사실대로 알리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더 이상 고무도장이 되지 않겠다”는 의원들과의 싸움에서 트럼프는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최근 뮬러 특검 해임을 막기 위한 2개의 초당적 법안이 발의되었고, 트럼프가 강력 반대했던 러시아 제재법안이 역시 초당적으로 통과되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그 제재를 완화시킬 트럼프의 파워까지 제한시킨 법안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번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 지지에 트럼프는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고 폴리티코는 이런 의회의 전개를 ‘도널드 트럼프 고삐잡기’라고 요약했다.

가만히 있을 트럼프는 아니다. 공화의원들을 ‘멍청이들’이라고 비난하며 “대 러시아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해졌다. 헬스케어법도 못 만드는 바로 그 의원들에게 감사하라”고 조롱하는 트윗을 날렸다. 즉각 대응에 나선 의원은 오바마케어 폐지를 침몰시킨 바로 그 장본인 존 매케인이었다 – “당신은 우리 민주주의를 공격한…푸틴에게 감사하라”

트럼프의 트윗에 침묵하고 외면하던 의원들이 요즘은 반격을 가하고 있다. “공화당 상원은 60표(필리버스터) 규정을 지금 당장 없애야한다” “8명 민주의원이 이 나라를 통제하고 있다…장난이냐!”는 트럼프의 상원 간섭 트윗에 공화당 상원 중진 오린 해치는 그 규정 폐지는 “공화당의 종말이자 상원의 종말이 될 것”이라면서 트럼프의 행동이 공화당의 입법노력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개탄했다.

트럼프에 대한, 정확히 말해 트럼프 표밭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공화당 대상 여론조사에서도 내려가는 트럼프 지지도를 보며(2월 80%에서 지난주 67%로 하락) 더 이상 트럼프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정적으로 적대시하는 것도 아니다. ‘사이 나쁜 친척’ ‘떨떠름한 우방’ 정도의 감정에서 헤어졌는데 9월에 다시 만나 산적한 과제를 해결해야 하니 의원들에겐 한 달의 귀향도 별로 즐겁거나 편한 휴식은 못 된다.

이번 ‘화염과 분노’ 발언이 보여주듯 4성 장군 출신 신임 백악관 비서실장의 트럼프 고삐잡기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파급효과에 별로 개의치 않는 ‘네버 엔딩 트럼프 쇼’가 계속될 것이라는 예보이기도 하다. 공화당 대통령의 ‘통치’에 연대책임을 져야 할 공화당 의회의 험난한 여정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한국일보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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