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반 이민’ 쉐리프 사면

불법 체류자 사냥꾼’으로 악명 떨쳤던 반 이민의 기수 조 아파이오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여정은 10년 전 한 교통단속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아파이오가 이끄는 애리조나 주 매리코파 카운티 쉐리프국의 주요 업무는 공포의 불법이민 단속 작전이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이는 장소 인근에 잠복해 있다가 이들을 태우고 가는 자동차를 따라가 세운 후 라틴계는 무조건 체포하는 식이었다.

2007년 아파이오 휘하의 경찰들이 마누엘 멜렌드레스를 ‘불법 체류 의심’을 이유로 체포하여 9시간 동안 구금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은퇴 교사인 멜렌드레스는 합법적 비자를 소지한 관광객이었다. 그는 피부색에 따른 편견 수사인 ‘인종 프로파일링’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다.

개인 소송으로 시작된 이 케이스는 애리조나 거주 시민권자들도 포함된 라틴계 피해자들이 합류하면서 집단소송으로 확대되었고 2011년 승소를 거두었다. 헌법에 명시된 평등 보호 조항을 위반했다고 지적한 연방지법의 G. 머리 스노우 판사는 위헌 단속과 범죄에 대한 합리적 이유 없는 구금을 중단하라는 잠정 금지명령을 내렸다.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인 스노우는 2년 뒤 이 잠정명령을 영구적 금지명령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아파이오는 이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그의 쉐리프국은 위헌 단속을 계속했으며 아파이오는 법원 명령 불복 사실을 인터뷰 등에서 공공연하게 떠벌였다. 격노한 스노우 판사는 2016년 연방법무부에 아파이오의 법정 모독 혐의를 조회했고 법무부 조사 후 기소된 아파이오의 법정 모독 케이스는 연방지법 수전 볼턴 판사의 법정으로 넘어갔다.

지난 7월의 판결에서 볼턴 판사는, 스노우 판사의 명령 내용이 애매했다며 고의적 명령 불복이 아니었다는 아파이오 측 주장에 대해 명령 내용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했으며 아파이오는 내용을 알면서도 고의로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의적으로 법정 명령을 위반했으므로 피고의 법정 모독은 유죄다”

매리코파 카운티의 6선 쉐리프였던 아파이오는 2016년 11월 7선에 도전했다가 낙선했으며 계속 자신의 유죄 판결이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사이트 폴리티팩트는 그의 재판관련 사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유죄는 오바마 행정부와 관계없이 시작되었고 대부분 진행되었다고 지적했다.

2010년 아파이오와 당시 주지사 잰 브루어 등 공화당 강경파들이 제정한 애리조나 주 새 이민단속법의 ‘비인도적, 비상식적, 인종차별적, 악의적, 반 이민정책’에 전 미국이 경악하는 와중에서 아파이오의 재판을 통해 드러난 그의 인종차별적 경찰행정은 가혹하고 잔인했다.

마구잡이 단속으로 잡혀온 소수계에 대한 박해가 1930년대 앨라배마를 연상케 한다고 LA타임스는 개탄했다. 그 자신이 ‘강제수용소’라고 부르는 텐트 감옥을 설치해 한여름의 폭염과 겨울의 강추위에 시달리게 하며 강제노역에 동원했고 인종적 욕설과 협박과 학대가 자행되었다.

피닉스 뉴타임스에 의하면 160명이 그의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고 자살률이 23%에 달했다. 그의 쉐리프국을 대상으로 한 법적 민원이 1만3,000여 건을 넘었고 수없이 제기된 소송 결과 세금에서 1억4,000만 달러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으로 지불되었다.

법을 집행하는 공복으로 법을 위반하고 법원 명령을 어기며 권력을 남용해온 그는 이처럼 계속 소송을 당해 여러 차례 패했지만 그 부담을 떠맡은 것은 카운티 정부와 세금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개인에 대한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최고 6개월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10월5일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 해안으로 몰려오던 지난 금요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파이오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샬러츠빌 사태이후 격화된 인종갈등에 기름을 들이 부으며, 10여년 긴 여정 끝에 이뤄낸 이민자들의 정의구현 노력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트럼프의 아파이오 사면은 사실 깜짝 놀랄 일은 아니다. 아직 선고가 내려지지도 않은 시점이고, 아파이오가 역대 대통령의 사면 대상자들과는 달리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행사’다. 또 오바마 미국 태생을 의심하는 ‘버서운동’에서 ‘라티노 때리기’까지 마음이 잘 맞아 ‘정치적 소울 메이트’로 불리는 아파이오에 대한 트럼프의 사면은 트럼프 자신이 여러 차례 언급한 사안이었다.

예상했다 해서 실망과 분노가 덜한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과 반 이민 갈등으로 인한 크고 작은 충돌은 계속되었지만 헌법에 명시된 만인에 평등한 정의와 인도주의에 기반한 도덕적 양심은 변치 않는 기본 가치관으로 미국을 지탱해 왔다. 그리고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보수든 진보든, 미국의 대통령들은 이 가치관을 대변해 왔다. 최소한 한인 이민사회가 겪어온 대통령들은 그랬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고, 그럴 의사도 없는 듯 보인다. 그는 악명 높은 반 이민 인사를 사면으로 ‘보상’했고 “애리조나를 안전하게 지켜온 미국의 애국자”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쉐리프 조는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수행한 것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서 사법부에 대한 정면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사면이 법 집행으로 포장된 인종차별을 정당화시키는 메시지가 되고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현 대통령의 인종과 이민에 대한 속마음을 다시 한 번 드러내준 이번 사면은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소수민의 ‘투표’에 대한 의무를 또 한 번 절감케 한다. ‘내 한 표의 무게’를 우리 모두가 자각할 수 있을 때 트럼프와 아파이오의 결탁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우리의 아이들이 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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