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머들이 꿈을 펼치는 나라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 8.15 광복절 노래 가사이다. 초중고 시절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경험하지도 못한 해방의 감격에 가슴이 먹먹하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서도 ‘8.15 해방’을 맞은 젊은이들이 있다. ‘드리머’로 불리는 서류미비 청(소)년들이다. 이들이 ‘불법’ 체류의 딱지에서 해방돼 ‘합법적으로’ 학교 다니고, 일하고, 운전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허용한 DACA(불체 청소년 추방유예조치)가 5년 전 이날부터 시행되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 손잡고 미국에 온 이들은 철들자 ‘감옥생활’이었다. 이민법이라는 철창에 갇혀 스스로 숨고 감추며 없는 듯 살아야 했다. 엄연히 실재하는 데도 서류상 이들은 존재자체가 부인되고, 추방 공포에 감히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다.

이 사회의 지하에서 그림자처럼 살던 이들이 마침내 지하실 문을 열고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계기가 바로 DACA 였다. 공원의 흙도 다시 만져보고 싶고, 바닷물도 기뻐서 춤을 추는 듯한 해방의 감격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해방의 5년, 그리고 이들은 다시 ‘불체’의 올가미에 갇혀 음지 속으로 던져질 위험에 처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DACA 폐지를 선언했다.

DACA는 태생이 불안정했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랐지만 불법체류 신분이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 수적으로 너무 많아지자 일단 임시로라도 이들을 구제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임시조치이다. 해당 젊은이들에게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주는 것도, 한번 신청하면 영구적으로 혜택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수혜자들은 2년 동안 노동허가를 받고 추방을 유예 받는 것뿐이다. 2년 후에는 다시 신청해야 한다.

미국사회가 이들 드리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였다. 당시 200만명으로 추산되던 불체 청(소)년들을 마냥 투명인간 취급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2001년 연방의회에 DREAM(미성년이민자 계발 구제 교육) 법안이 상정되었다. 16세 이전에 미국에 와서 5년 이상 거주한 12세~3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일정 조건을 갖추면 합법적 체류자격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법안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으로 제정되지 못했다.

DACA는 드림법안이 정치적 공방 속에 표류를 거듭하자 참다못한 드리머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얻은 결실이다. 드림법안으로 기대에 부풀었던 이들은 법안이 정치적 이해의 볼모가 되자 2000년대 중반부터 시위에 나섰다. 미국사회에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고 법안 지지를 호소하는 시위를 적극적으로 전국적으로 펼쳤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6월15일 DACA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두 달 후 시행에 들어간 배경이다.

2년의 임시 혜택이라고는 해도 또래 친구들처럼 살아보는 해방감은 달콤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버젓한 직장을 갖고, 앞날을 계획하는 일 등 남들 하는 일들이 그들에게도 가능해졌다. 난생 처음 두려움 없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던 이들이 DACA 폐지로 날개가 꺾일 위험에 처했다.

내가 잘 아는 청년이 있다. 9살에 미국에 와서 이제 33살이 된 드리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타인종 친구들과 함께 자라면서 당연히 나는 ‘아메리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6살이 되면서 내가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다른 친구들은 운전면허를 따는데 나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는 창피했고 혹시라도 그 사실이 알려져 아이들이 놀릴까봐 무서웠다고 했다. 한창 예민한 나이인 10대를 그는 반항과 방황으로 보냈다.

힘든 조건이 오히려 축복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대학교에 다니면서였다. 대학에서 멘토를 만나고,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사회정의에 눈을 뜨게 되었다. 드림법안이 상정되고 드리머들의 권익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그는 드림법안 지지 대학생 시위에 앞장섰고 이후 경제 불평등에 항의하는 ‘점령하라’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서류미비라는, 그래서 생존에 필요한 기본 권리들을 거부당하는 엄혹한 조건에서 그는 두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거부를 받아들이고 이에 도전하는 법, 그리고 남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는 법이다. 그렇게 그는 성숙했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일하면서 크나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DACA 시행 후 그는 대학원을 마쳤고 현재 법률회사에서 일하면서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DACA가 폐지되면 현재의 직업도 앞으로의 계획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요. 최악의 경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미국사회가 뭔가를 만들어 내리라고 기대해요.”

그의 믿음대로 미국사회가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때이다. ‘서류’ 빼고는 뼛속까지 미국인인 이들 청년을 미국사회가 내칠 수는 없다. 이들이 꿈을 펼치며 미국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민의 나라 미국이 할 일이다. 임시 조치가 아니라 드림법이 제정되어야 하겠다.

<한국일보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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