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주는 세 마디 말

최근 주말 저녁 파란 신호등에 교차로를 건너던 필라델피아 한인 니디아 한씨가 돌진해오는 좌회전 차량에 거의 치일 뻔 했다. 혼비백산한 한씨가 백인 여성운전자를 나무라자 그녀는 사과 한마디 없이 빤히 쳐다보며 “여긴 미국이다(This is America)”라고 일갈하고는 곧장 가버렸다. 한씨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 사연을 첫 사흘간 140여만 명이 조회했다.

한씨는 미국시민이다. LA 북쪽 벤추라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공부했다. 현재 필라델피아 ABC의 기자 겸 앵커이며 20여년 간 전국 유수 방송국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언론인이다.

한씨는 백인여성 운전자가 이 비디오를 꼭 봐야한다며 “나는 당신보다 미국을 더 잘 안다. 나에겐 그 세 마디 말(This is America)을 할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백인여성의 말은 세 마디뿐이지만 “왜 유색인종이 백인나라에서 걸쩍거리느냐. 꼴 보기 싫다.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긴 말이 함축돼 있다.

하지만, 그녀만 나무랄 수 없다. 요즘 보수 중산층 미국인(백인)들의 정서가 대개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정책, 특히 요즘 크게 문제가 된 그의 ‘DACA’ 폐지 고집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 탓이다.

DACA는 어려서 부모를 따라와 미국에서 자라고 공부했는 데도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추방 대상자가 된 80여만명의 ‘드리머(Dreamer)’들을 구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드리머는 ‘외국인 미성년자 개발 구제 교육(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법안의 약자인 ‘DREAM’에서 연유했다. 지난 2001년 처음으로 연방상원에 상정됐다.

드림법안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상정됐지만 번번이 상원 아니면 하원에서 부결돼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이윽고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DACA를 발동했다. 트럼프는 작년 대선 캠페인 때부터 DACA가 의회의 입법절차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외국인을 두둔하는 법안이라며 이를 철폐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드리머들이 미국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드리머들 중 상당수가 고등교육을 받은 후 IT 등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 미국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마이크로 소프트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미국 굴지의 IT 기업들이 한 목소리로 DACA 프로그램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의 계산은 다르다. 전체 불체자 1,100여만명 중 대다수가 히스패닉이고, DACA 수혜자 88만6,814명 중에도 68만여명이 멕시코인이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히스패닉 유권자 71%가 오바마를 찍었다. 불체자들을 구제하면 1,100만명의 새 민주당원이 생겨나는 꼴이다. 그래서 이들을 추방하고 400억 달러를 들여 멕시코 국경장벽을 쌓겠다고 벼른다.

미국 이민정책은 처음부터 차별적이었다. 국내거주 2년 이상의 백인에게만 시민권을 줬다(1790년). 흑인노예의 시민권 취득을 막았고(1857년), 무정부주의자, 일부다처론자 등의 이민을 금했다(1875년). 중국인 배제법이 통과됐고(1882년), 전체 동양인들로 확대됐다(1917년). 요즘 트럼프 행정부는 고등교육, 전문직종자들에 국한된 이민법을 구상 중이다.

니디아 한씨는 페이스북 경고 비디오를 자신의 5살 딸과 3살 아들을 위해 올렸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런 꼴을 수없이 겪었기 때문에 참았지만 그날 밤 자녀들이 백인여성 운전자의 말을 직접 들었다면 상처를 받았을 것이란다. 한씨는 무 대응이 결코 좋은 대응은 아니라며 오지랖이 상대적으로 넓은 자신이 목소리를 높여야할 책임의식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드리머들 가운데는 한국 출신도 7,813명이나 있다. 필리핀 인도 파키스탄 등도 포함한 아시아 출신 드리머들은 전체 DACA 해당자의 10%를 점유한다. LA와 뉴욕 등 대도시 한인사회에선 이미 DACA 폐지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IT 산업의 선두주자인 시애틀에서도 한인 1세들과 차세대들이 상처를 주는 그 세 마디 말에 과감히 맞서야 한다.

<한국일보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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