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시안으로 산다는 것

우리 가족이 이민 왔을 때 딸은 1살 반이었다. 두 살이 되어 데이케어 센터에 다니면서 아이의 ‘미국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영어발음이 달라지고 또래 미국아이들의 노래와 놀이가 자연스럽게 몸에서 흘러나왔다.

아이가 데이케어 동무들에게서 배운 놀이들 중에는 당황스러운 것도 있었다. “재패니즈, 차이니즈 ~~” 하면서 양 손가락으로 눈가를 잡아당기는 동작이었다. 유색인종이 거의 없던 그 동네에서 아이는 자신이 ‘재패니스, 차이니스’와 한 부류라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코리안!”이니 거리낌 없이 백인 꼬마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백인 동네, 백인 문화권에서 자란 많은 2세들,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들의 공통된 유년기 경험일 것이다. 자라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그 놀림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해 나간다. 미국에서 아시안으로 살아가는 한 과정이다.

월드시리즈가 끝났다. ‘다저스 우승’ 꿈에 부풀었던 LA 팬들은 아쉽게 기대를 접어야 했다. 그리고 아시안 커뮤니티에는 숙제가 하나 떨어졌다 – 아시안 비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난달 27일 시리즈 3차전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율리 거리엘 선수가 다저스 투수 유 다비시를 인종적으로 조롱하는 장면이 TV중계에 그대로 잡혔다. 쿠바 출신 거리엘은 일본인 선발 다비시를 상대로 홈런을 친 후 덕아웃에서 ‘치니토’라는 아시안 비하 발언과 함께 양쪽 눈가를 잡아당기며 그를 대놓고 조롱했다.

야구팬들의 맹비난이 쏟아지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즉각 그에게 2018년 시즌 첫 5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5경기에 나가지 못해서 생기는 금전적 손실은 30만 달러. 몇 초 경솔한 행동으로 손해가 크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2세들의 생각은 다르다.

30대의 한 한인 2세는 “징계를 내년이 아니라 당장 이번 월드시리즈에 적용해야 했다”며 분개했다. LA의 아시안 비영리단체 대표들도 지난 1일 기자회견을 갖고 거리엘의 행동과 메이저리그의 가벼운 처벌을 규탄했다. 미국사회에 만연해있는 아시안 차별의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세들의 민감한 반응은 그들이 주류사회에서 겪는 경험들과 상관이 있다. 1세들이 주로 한인들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느라 겪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경험한다. 전문직종 · 직장에서조차 거리엘이 했던 제스처가 곧잘 조크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대개 악의 없는 장난이지만, 만약 누군가 얼굴에 검정 칠을 하고 흑인동료의 피부색을 놀린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앞의 2세는 반문한다.

아시안 조롱은 명백한 인종차별이고 그 역사는 길다. 서양의 백인들은 동양의 아시안을 ‘황색 위험’으로 경계하며 꼬투리만 있으면 비하했다. 대표적인 것이 외모이다. 다운 신드롬을 몽고병으로 부르는 식이다. 1866년 이 병을 처음 발견한 영국인 의사 존 다운은 환자의 특이한 얼굴모양이 동양인 같다며 몽고병이라고 이름 붙였다. “황인종의 눈은 교활한 천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는 주장이 19세기 인류학계에서 학술적으로 논의되었을 정도이다.

이런 편견을 배경으로 미국에서도 아시안에 대한 차별은 극심했다. 1882년 중국인 배척법을 시작으로 1924년부터는 모든 아시안의 이민과 시민권 취득이 금지되었다. 아시안의 거주 지역은 물론 학교와 직업도 제한되었다. 규제가 풀린 것은 2차 대전 후 미국이 자유세계의 리더로서 아시아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부터였다.

이 즈음 등장한 것이 ‘모델 마이너리티’ 개념이다. 사회적 배척을 이겨내기 위한 중국 커뮤니티의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다. 중국인은 열심히 일하며 교육열 높고 법 잘 지키는 온순한 사람들, 그러니 미국사회에 절대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홍보를 조직적으로 펼쳐나갔다.

이어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거세지자 정치인들이 이를 차용했다. “차별만 문제 삼지 마라. 아시안들 봐라. 열심히 일하니 잘 살지 않느냐”며 인종차별 현실에 물 타기를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후 이민법 개정과 함께 고학력 아시안들의 이민 물결이 이어지면서 아시안은 명실 공히 모델 마이너리티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 2세들이 전문직 진출은 해도 좀처럼 고위직에 오르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죽의 장막’이 가로막혀 있다. 실리콘밸리의 경우 일반사원은 아시안이 대다수이지만 매니저급은 18%, 임원급은 14%에 불과하다. 법조계도 다르지 않아서 지난 2014년 기준, 로펌 변호사 중 아시안은 11%이지만 파트너는 3%에 불과하다.

아시안은 ‘불평 없이 고분고분 말 잘 들으며 일만 하는 일꾼’ 이미지를 벗을 때가 되었다. 순종과 겸손만이 미덕이 아니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는 부당하다고, 불쾌한 것에 대해서는 불쾌하다고 소리 높여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다. 아시안 비하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일보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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