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앨라배마!”

12일 저녁 자신의 승리를 알리는 AP의 첫 보도가 타전된 직후, 민주당 후보 덕 존스는 벅찬 감격이 담긴 한 마디의 트윗을 날렸다 : “땡큐, 앨라배마!”

공화당 후보 로이 모어 패배의 결정적 요인이 된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을 맨 처음 보도했던 워싱턴포스트도 이번 선거를 분석한 사설을 게재하며 “땡큐, 앨라배마”란 제목을 달았다.

13일 LA타임스에도 짧지만 강렬한 독자편지가 실렸다 : “디어 앨라배마 : 진심으로 땡큐! 존경을 담아 감사하는 나라가”

아마도 이 한 마디는 이날 밤 앨라배마 주 연방 상원의원 보궐선거 결과를 주시하던 수많은 미국민들의 첫 반응이었을 것이다. ‘성추문에 휘말린 인종주의자를 상원의원으로 선출한 나라’로의 추락을 막아 주며, 최소한의 품위와 기본 가치관이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준데 대한 감사와 안도의 표시다.

“땡큐 앨라배마”의 가장 큰 환호를 외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민주당이다. 25년 만에 보수의 텃밭 앨라배마에서 상원의원을 탄생시킨 민주당의 승리는 2017년 선거의 최대 이변으로 기록될만하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벼르는 민주당에게 강한 모멘텀이 되어 줄 것이다.

기대보다 높은 투표율로 고조된 표밭의 에너지와 되돌아온 큰손들의 기부로 활력을 되찾은 민주당은 금년 초만 해도 꿈조차 꾸지 못했던 상원 주도권 탈환의 가능성을 진단하기 시작했다.

물론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내년 상원의 선거지도 자체가 민주당에게 불리하다. 공화당은 8석만 재선에 회부되는데 민주당은 무려 25명이 재선에 출마한다. 그러나 네바다, 애리조나, 테네시 등 접전이 예상되는 공화의석 중 2석만 빼앗아 온다면 다수당 탈환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된다.

앨라배마 선거에서 나타난 현상과 교훈이 민주당 승리전략에 탄력을 주고 있다.

오바마의 ‘무지개 연합’ 같은 유권자 연합이 지난달 버지니아 선거에 이어 앨라배마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고 월스트릿저널은 분석한다. 유색인종·여성·젊은층·고학력 고소득 중도층의 표가 압도적으로 민주당에 쏠린 것이다. 여기에 이미 전국적 무브먼트로 확산되고 있는 여성들의 성추행 고발 캠페인 ‘미 투’ 물결이 민주당 승기에 힘이 되어줄 것이다.

공화당 텃밭에서의 조용한, 그러나 강력한 당 차원의 지원 작전도 상당한 효과를 증명했다. 표면적으로 존스 후보는 전국 민주당과 거리를 두며 ‘로컬’ 캠페인에 집중했으나 당의 지원으로 모어 후보보다 몇 배나 많은 선거자금을 쏟아 부었다. 보수 표밭에서의 역풍 초래를 막으면서 민주 표밭을 동원하는 전략의 성공이었다.

‘잔칫집’ 민주당의 환호는 한 목소리로 터져 나왔지만 ‘초상집’ 공화당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 물론 어떤 잣대를 갖다 대도 ‘악몽의 밤’인 것은 틀림없지만 내분 심한 당내 분파에 따라 타격의 차이가 완연하다. 논란 후보 모어를 전폭 지지했던 ‘아웃사이더’ 그룹은 당분간 재난적 완패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되었지만 모어를 공개 반대했던 의회 지도부 등 주류 그룹에겐 ‘한 줄기 빛’의 여지를 남겨준 교훈적 패배라 할 수 있다.

책임공방은 이미 시작되었고 말 뒤집기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은 경선에서 모어를 지지하지 않은데 대한 자화자찬 트윗을 날렸지만 이번 패배의 타격을 피해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경선에서 당 주류의 조언에 따라 모어의 상대를 지지했다가 패배를 맛본 트럼프는 본선에선 태도를 바꿔 전면에 나서 막바지까지 로보콜과 대규모 집회 등을 통해 모어를 전폭 지지했다.

그런데 진 것이다. 패배의 더 큰 비난과 직격탄은 주류에 맞서 모어 캠페인을 적극 지원해온 아웃사이더의 기수 스티브 배넌에게 쏟아지겠지만 그는 공화당의 리더가 아니다. 그가 벌이는 공화당 현직의원 낙선운동이 힘을 잃을 경우 그냥 사라지면 그만이다.

트럼프는 다르다. 의회와의 더욱 깊어지는 불신의 골, 대통령 리더십의 약화를 의미한다. 금년 하반기 선거에선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들이 연달아 낙선했다. 더구나 앨라배마에서의 패배는 지난달 버지니아 패배보다 그 파장이 훨씬 클 것이다. 보수지역 남부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트럼프 파워의 한계를 내년 공화후보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성추문 상원의원 로이 모어의 공화당’이란 낙인을 모면하면서 한 숨 돌리긴 했지만 의회 지도부 등 주류의 입장도 크게 낫지는 않다. 공화당의 주도권이 약화되고 민주당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산적한 어젠다들의 입법화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고 민주당의 활기찬 승세에 2018년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후보들의 불안은 가중될 것이다.

존스의 역전승은 전국을 휩쓰는 ‘미 투’ 물결과 함께 미 정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앨라배마에서 승패를 가른 2만2,000여표는 공화당의 반란표인 기명투표 숫자와 거의 비슷하다. 확대 해석에 의한 민주당의 지나친 기대는 위험하다는 뜻이다. 트럼프 지지층의 저력, 공화 주류의 각성 등으로 내년 선거판이 어떻게 요동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 앨라배마 공화당 유권자들이 당을 등지는 용기로 지켜낸 미국의 품위와 가치관을 다시 훼손시키려는 정략은 이제 어디에서도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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