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대법관 퇴장의 의미

의식 했건 못했건, 지난 13년 우리는 ‘앤서니 대법관의 아메리카’에서 살아왔다.

매 헌법조항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좌우하는 실질적 의미를 갖고 있는 미국에서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힘을 가진 기관이 연방대법원이다. 양극화된 정계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강경 보수 4명과 강경 진보 4명으로 맞서고 있는 현 대법원의 9명 대법관 중 수많은 논란 케이스를 5대4 판결로 마무리 지은 스윙 보터가 ‘중도 보수’ 케네디였다.

케네디는 적극적으로 질문을 많이 하는 대법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질문을 하면 모두가 더 잘 경청하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고 PBS의 대법원 출입기자는 전한다. 팽팽하게 맞선 핫이슈 일수록 승소 여부가 그의 심중에 달렸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대법원장은 존 로버츠였지만 같은 해, 케네디보다 더 확실한 중도였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이 은퇴하면서 대법원은 계속 ‘케네디의 법정’으로 불려왔다.

1988년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취임한 케네디는 임기 내내 대법원 이념지형에서 중간을 지켜왔다. 첫 20년 동안은 오코너와 함께였고 오코너 은퇴 이후엔 케네디의 한 표가 대부분 주요 케이스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코너보다 보수 성향이 강했던 케네디가 ‘중도’였는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케네디가 주요 판결에서 보수 쪽에 선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대기업의 무제한 선거기금 지출을 허용한 판결문을 작성하며 보수에 확실한 승리를 안겨주었고, 수정헌법 2조의 총기소유권리를 기본권으로 해석해 권총금지 규제법에 위헌판결을 내렸으며, 2000년 대선 후 ‘부시 대 고어’ 소송에서도 보수의 편에 서서 아들 부시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는데 일조했고, 투표권법 주요조항 무효화에 찬성표를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주 여론과 정계가 양분된 주요이슈에서 진보 대법관들에 합류했다. 동성애자의 기본권과 여성의 낙태권, 소수계를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과 사형제 등 전국의 관심이 집중된 소송에서 5대4 판결로 진보의 승소를 끌어낸 것이 케네디 대법관의 한 표였다.

일관된 이념 성향 없이 케이스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오간 그에 판결에 대한 보수의 불만은 점점 높아졌다. ‘배신자’란 비난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지난 몇 달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부는 케네디의 은퇴를 학수고대 했다. 혹 상원주도권이 바뀔지도 모를 중간선거 전에 차기 대법관 인준을 끝내기 위해서다. 성질대로 로버츠 대법원장에게까지 마구 비판을 쏟아 놓았던 트럼프도, 그래서 케네디에겐 찬사만을 보냈다고 한다)

진보 역시 케네디에 대한 원망을 멈추지 않았다. 점점 보수화되는 정국에서 그나마 그에게 기대면서도, 그의 확실한 보수 결정, 특히 마지막 회기의 트럼프 반이민 행정명령 합헌 판결엔 충격과 실망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스윙 보터’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확실한 보수이면서도 양측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중간을 지킨 그에겐 독특한 원칙이 있었다고 잭 골드스미스 하버드 법대 교수는 지적한다. 자신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기본권에 대한 법적 보호였다.

38세 때 당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추천으로 최연소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취임했던 그는 진보 다수의 법원에서 침착한 태도와 겸손한 성품으로 양분된 이슈도 진지한 심의를 가능케 하며 진보 법조인들로 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품위 있고 공정한 법관으로서의 그의 명성은 12년 후 민주당 주도 상원에서 97대0의 만장일치 인준을 이끌어내는데 힘이 되었다.

대법원 입성 후 초기 강경보수와 보조를 맞추었던 그는 1992년 오코너와 진보 대법관들에 합세하여 5대4로 낙태권 지지판결을 이끌어내면서 보수진영을 아연케 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중간 역할은 두 가지 원칙에 근거했다. 소송 당사자가 사형에 직면한 청소년이든, 관타나모에 수감된 테러용의자든, 케네디 자신의 종교인 가톨릭이 금지하는 동성애자이든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보호였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그는 중도라기보다는 ‘오픈 마인드를 가진 보수 법관’이란 평가가 더 적절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그의 후임 인터뷰를 시작했다. 다음 주 차기 대법관을 지명하고 9월 중 인준 표결을 다짐하고 있다. 강경 보수 새 대법관의 입성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케네디에 의해 아슬아슬 생명을 유지해온, 낙태권과 소수자들의 여러 기본권이 다시 치열한 논쟁에 휘말려 흔들릴 것이라는 뜻이다.

이번 여름 워싱턴이 뜨거운 인준전쟁으로 달아오를수록 미국은 케네디 대법관 은퇴의 무게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개인의 기본권 수호에 대한 그의 신념은 동성결혼 차별을 금지시킨 판결문에 가장 드라마틱하게 드러나 있다. “그들의 희망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에서 배제되어 외롭게 살도록 지탄받지 않는 것이다…그들은 법의 시각에서 동등한 존엄성을 요구했고, 헌법은 그들에게 그 권리를 인정한다” – ‘그들’은 동성애자들만이 아니다. 극우보수 물결에 자칫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이민자도 포함된다.

개인의 자유·평등·행복 추구의 권리수호를 기본정신으로 하는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보내며, 그 정신에 헌신했던 노판사의 퇴장을 존경과 감사로 배웅한다.

<한국일보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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