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매케인의 ‘이민 유산’

또 한명의 친이민 리더가 세상을 떠났다.

1965년의 케네디 이민법을 앞장 서 통과시켰던 테드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의 부음을 듣고 소수계 이민자를 포함한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에게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던 그의 47년 의정생활에 관한 칼럼을 썼던 것이 9년 전 이맘 때였다. 신기하게도 같은 날짜인 지난 8월25일 민주당인 케네디와 함께 포괄적 이민개혁 실현을 끈질기게 추진했던 존 매케인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이 같은 뇌종양으로 타계했다.

매케인의 타계는 ‘현대 미 정치의 상징적 변곡점’이 될 것으로 지적한 워싱턴포스트는 그 이유의 하나로 매케인 이후의 공화당 이민정책을 들었다.

역사는 매케인을, 공화당이 트럼프의 반이민 선동이 아닌 인도적·현실적 이민포용에 당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고 믿었던, 마지막 공화당 리더의 하나로 기억할 것이라고 전제한 포스트는 그러나 초당적 이민개혁 실현은 현재로선 상상조차 불가능하다면서 트럼프의 선동적 유세가 11월 선거에서 성공을 거둘 경우 공화당은 ‘더 노골적인 반이민 정치조직으로 영구화 될 것’을 우려했다.

양극화로 치닫는 요즘의 정국에서 당론보다 국익을 우선하며 ‘이단아’ 역할을 주저하지 않아, ‘보수의 양심’으로 평가받았던 매케인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매케인은 이민개혁의 공화당 리더였다. 공화당에선 유일하게 적극 선두에 나섰던 그의 죽음은 이민사회가 염원해왔던 포괄적 이민개혁의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워졌음을 의미한다.

국경지대 애리조나 주의 원로 상원의원답게 이민관련 지식이 풍부했던 매케인은 거의 20년 동안 초당적 이민법안 추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2000년 대선 공화 경선에서 겨뤘던 조지 부시 측의 흑색선전으로 곤욕을 치렀던 그는 부시 당선 후엔 부시의 포괄적 이민개혁 정책의 강력한 옹호자가 되면서 이민개혁 입법 추진에 뛰어 들었다.

이민을 미 사회와 미 경제의 ‘힘의 원천’으로 보는 매케인은 이런 긍정적 시각을 기반 하는 경제적·인도적·국가안보적 측면에서 실용적인 이민개혁안을 추진했다. 국경을 강화해 불법이민을 줄이고, 합법이민을 늘여 노동력 증강으로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한편 이미 미국에 정착했으면서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기존 서류미비자들에게 신분합법화의 길을 열어주어 미국의 인도적 가치관에 부합하는 취지의 법안이었다.

당을 초월한 협력으로 케네디와 공동작성한 2005년 ‘매케인-케네디 이민개혁안’은 그 후 10여년 연방의회에서 발의된 대부분 친이민 개혁안의 기초가 되었다. “역사가들이 무엇이라 말하든 간에 매케인-케네디 법안은 포괄적 이민개혁의 중심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당파적 이민정책연구소는 평가한다.

그러나 당시에도 극우파의 ‘사면 반대’ 아우성은 높았고 핵심표밭의 분노에 대한 공화의원들의 두려움은 컸다. 어렵게 초당적 합의로 작성되었던 매케인-케네디 이민개혁안의 의회통과는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매케인이 정치현실에 휘둘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보수진영에서 ‘후안 매케인’으로 불렸던 그도 정치생존의 상황에선 오른편으로 기울었다. 특히 티파티 물결이 휩쓸었던 2010년 상원 공화경선 때엔 악명 높았던 애리조나 주 반이민법을 지지하는 등의 변신으로 실망을 주었다. 반이민 선동까진 아니었지만 이때의 상흔은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못한 상태다.

재선에 성공한 매케인은 다시 초당적 이민개혁을 추진했고 3년 후 그를 포함한 양당의 ‘8인방’은 압도적 표차로 포괄적 이민개혁안의 상원 통과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개혁안은 강경파 압력에 굴복한 공화당 주도 하원에서 표결에 회부조차 못된 채 무산되고 말았다.

이민개혁 패배가 자신의 36년 의정생활에서 ‘최대 실망’이었다고 매케인은 지난 5월 출간된 회고록 ‘쉬지 않는 파도’에서 개탄했다. “다른 어떤 패배보다 실망스러웠다. 포괄적 이민개혁은 미국민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었고, 대부분 의원들 스스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의회에 재 시도를 촉구했다. “이민개혁은 이 나라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역사에 오점을 남겼던 이전의 공포와 적대가 다시 부상하려는 정치적 순간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미 10여 년 전 케네디와 이민개혁의 청사진을 만들었던 그는 실현을 위한 로드맵도 지시했다. “의회 통과엔 다음 3가지 중 하나가 필요하다 : 민주당이 하원을 재탈환하거나, 실용적 해결을 원하는 공화 하원의원들이 위원회를 거치지 않는 심사배제 절차로 표결에 회부하거나, 공화지도부가 강경파 반대를 누르고 표결을 강행하거나…난 마지막 방법에 찬성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젠 내게 그럴 파워가 없다”

“분열할 때보다는 이념을 초월해 협조할 때에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매케인의 타계로 초당적 타협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민 논쟁에서도 당분간은 ‘장벽건설’과 ‘이민국 폐지’로 맞서며 ‘타협’과 ‘중도’를 금기시하는 양극화가 한층 가열될 것이다.

수요일 애리조나 주 의사당 시신 안치로 시작된 매케인 추모행사는 워싱턴 연방의사당과 국립 대성당의 추모예배와 해군사관학교 묘지 안장으로 이어지며 일요일까지 애도의 물결 속에서 계속된다. 반이민 행정부의 전방위 공격에 시달릴수록 매케인 부재의 상실감을 체감하게 될 이민사회도 감사와 애도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

글/한국일보 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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