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빈 뉴섬의 ‘캘리포니아 드림’

캘리포니아의 ‘제리 브라운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려 한다. 통산 4선의 80세 주지사가 이끌어 온 주 정치사의 긴 챕터가 끝나면 다음 장은 무엇이 될까. 앞으로 열이틀, 그동안 돌발변수만 없다면 51세 젊은 리더 개빈 뉴섬의 ‘캘리포니아 드림’으로 이어질 것이다.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공정한 세상, 다양성의 사회”에 대한 ‘캘리포니아 드림’을 약속하는 뉴섬이 2018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 의사를 선언한 것은 브라운 재선 불과 석 달 후인 2015년 초였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주지사의 꿈을 키워왔고 지난 3년 치밀하게 준비해온 민주당 후보 뉴섬은 선거일이 두 주도 채 안남은 지금 사업가인 공화후보 존 콕스를 여유 있게 리드하고 있다.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할 뿐 아니라 보유 선거자금도 콕스보다 10배나 많다. 24일 현재 비당파적 정치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집계한 양 후보의 평균지지율은 52.3% 대 35.3%로 뉴섬이 17포인트 앞서 있다. 콕스가 이 짧은 시간에 이 큰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캘리포니아의 표밭 구성 자체도 그에겐 불리하다. 등록유권자의 47%가 무소속, 44%가 민주당이며 공화당은 25%에 불과한데 무소속 대부분도 왼쪽으로 기울어있다.

게다가 트럼프의 공개지지 덕에 ‘무명’을 탈출해 예선을 통과한 콕스에겐 ‘자격미달’의 꼬리표가 여전히 따라 다닌다. “정치경력이라고는 타주에서 4차례 낙선 경험이 전부”라는 비아냥에도 재정보수 신념이 확고한 콕스는 핫이슈로 떠오른 개스세 인상철회 주민발의안을 앞장 서 지지하며 추격전을 벌이고 있지만 자금부족으로 메시지 전달조차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20여년 공직 경력의 현직 부지사 뉴섬이 ‘풍부한 경험 갖춘 준비된 후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북가주에선 주지사 재목으로 첫손 꼽혀온 뉴섬도 남가주에선 그리 낯익은 얼굴이 아니다.

억만장자 게티가의 변호사였던 주 항소법원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뉴섬은 3세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싱글맘 가정에서 경제적·정서적으로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고교시절부터 일하며 생계를 도왔고, 야구 장학금을 받아 진학한 산타클라라 대학을 졸업한 후엔 고든 게티의 투자를 받아 와인스토어 ‘플럼잭’을 오픈하며 사업에 뛰어 들었다. 창업 당시 파트타임 직원 1명의 가게에서 종업원 800명의 22개 비즈니스로 성장한 ‘플럼잭 그룹’은 ‘현실을 모르는 정치 엘리트’라는 일각의 비판에 그가 자신 있게 내세우는 ‘현실 경험’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정치 인맥을 통해 주 정계 거물 윌리 브라운의 샌프란시스코 시장선거 자원봉사자로 1995년 정치에 입문한 그는 브라운 당선 후 시 커미셔너, 수퍼바이저로 임명되면서 정치 자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연소 수퍼바이저로 취임해 6년간 봉직한 후 34세 최연소 샌프란시스코 시장에 당선되었고, 재선을 거쳐 2011년엔 부지사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결승점을 눈앞에 둔 주지사 선거전의 선두주자다.

인기 높은 젊은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며 ‘꽃길’만을 걷는 듯 했지만 개인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그에겐 연설 원고가 없다. 어릴 때부터 시달려온 난독증으로 연설문을 읽을 수가 없어서다. 그래서 10분 연설을 준비하려면 6시간이 걸린다. 스타 검사와의 결혼도 파경으로 끝났다.

결정타는 2007년 초 재선을 앞두고 터진 2년 전 기혼 보좌관과의 불륜스캔들이었다. 즉각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그는 후유증으로 알콜중독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재선에선 72% 지지로 압승을 거두었다. 그 후 영화제작자인 제니퍼 시벨과 재혼하여 4명의 어린 자녀를 두고 있다.

2004년 시장시절 동성결혼 증명 발급으로 전국의 각광을 받았는가 하면 주지사 예선에서도 유니버설 헬스케어와 피난처 주법을 강력지지, 리버럴의 기수로 알려졌지만 자신은 “실용적 진보주의자”임을 강조한다. 시장 재선 때 친기업 중도파 민주당으로 출마했고 재임 중 홈리스 등 여러 이슈에서 좌파와 대립했던 것도 사실이다.

당선된다 해도 그의 앞에 쌓일 난제들은 주택난과 홈리스에서 이민과 세제개혁에 이르기까지 엄청나다. 유니버설 헬스케어 등 그의 공약은 당장 주 재정 현실의 벽에 부딪쳐 추진조차 힘들어 질 것이다. 거기에 ‘반 트럼프’ 투쟁도 이어가야 한다. 브라운 시절 시작된 수십건 트럼프 행정부와의 소송 처리도 그의 몫이다.

뉴섬은 “트럼프의 경제적 성공에 꼭 필요한 캘리포니아의 경제파워”를 자산삼아 저항을 넘어 대안 제시를 자신하지만 트럼프의 공격은 만만치 않다. 특히 그가 불붙인 피난처 주 반대는 여론을 양분시키면서 중도표밭까지 트럼프가 발 들일 틈을 허용하고 있다. 2016년 대선 때 캘리포니아 전체 58개 카운티 중 트럼프가 승리한 곳도 24개나 된다. 여유 있는 리드에도 뉴섬이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까닭이다.

6피트3인치의 훤칠한 키, 치약광고 모델로도 손색없을 환한 미소, 포토제닉 외모의 엘리트 정치인인 그에겐 벌써부터 대권도전 야망이 거론된다. 본인은 “내 기차는 새크라멘토에서 멈춘다”고 손을 내젓지만 대형주의 주지사들에겐 흔한 수순이니 가능성은 다분하다. 먼저 성공적인 주 통치 능력부터 증명해야 한다.

아, 그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물론 주지사 당선이다.

글/한국일보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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